노동조합 선전사업에 정보통신 날개달기

(1) 노동자의 또 하나의 무기, PC통신!

 

  '정보화사회'라고 다들 얘기합니다. 앞으로 이 사회에서 PC통신과 인터넷을 모르면 아무 것도 못할 것같은 심상찮은 '분위기'마저 조성되고 있습니다. 대체 PC통신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이길래 이토록 야단법석일까요?
 

▶ 100년전의 논쟁, "노동조합에서 전화를 사용할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 미국의 노동운동에서는 색다른 논쟁이 벌어진 바가 있었다고 합니다. 다름 아니라 '노동조합에서 전화를 사용할 것인가' 하는 논쟁이지요.

물론 지금 만일 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노동조합이나 활동가가 있다면 어떻게 그 활동이 가능하겠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해프닝으로밖에 보여지지 않는 이러한 논쟁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로서는 전화 설비와 전화요금이 재정적으로 큰 부담이어서 차라리 급사 한 명을 둬서 산하 조직간에 문서를 직접 전달하거나 우편으로 처리하는 게 훨씬 비용이 적게 드는 시절이었기 때문이지요. 만일 당시 전화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면 노동조합이 조직사업을 하거나 긴박한 투쟁의 시기에 연락을 취하는데 적지 않은 장애로 작용했을 것은 분명합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이와 비슷한 논쟁(?)을 노동조합운동 내부에서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PC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노동운동에 어떻게 도입하고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지요. 노동조합이 임단투와 고용문제 등 당면한 투쟁만으로도 벅찬데 어떻게 컴퓨터·네트워크 장비 구입과 사무업무 전산화 등에 예산과 인력을 쏟아 붓고, 컴퓨터 사용법을 익히고 노동운동에 활용하는 등의 일에 시간을 투자할 여유가 과연 있는가 하는 물음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컴퓨터와 네트워크는 아직도 노동운동에는 부담이자 사치에 불과한 것일까요?
 

▶ 또다른 투쟁의 무기, 한통노조 CUG와 총파업 통신지원단

  우리나라 노동조합운동에서 PC통신의 위력을 최초로 절감한 계기는 역시 투쟁 시기였습니다. 우선 95년에 정부와 정면 대결을 벌인 한국통신노동조합 투쟁이 바로 그것이지요. 이 때 정부는 '국가전복' 운운하며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해 대대적인 수배령을 내리는 등 전면탄압했으나, 수배된 지도부가 CUG(하이텔, go KTTU)를 통해 투쟁지침을 하달함으로써 전국 각지 수백개 지부 5만명에 이르는 조합원들의 투쟁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매개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한편 96년 12월 26일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맞서 96년말∼97년초에 전개된 전국 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 때 통신공간의 지지여론을 선도하고 인터넷을 통한 국제연대의 첨병이 된 [총파업 통신지원단]의 활동은 노동조합운동의 정보화에 한 획을 긋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정보통신운동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자발적인 통신인들의 참여 유도를 통해 구성한 총파업 통신지원단은 당시 온라인 상에서 '블랙리본 운동'과 '[파업지지] 말머리 달기 운동'을 전개했었습니다. 그 결과 하루에도 수백 수천 건의 글이 올라가는 통신망의 여론광장인 'PLAZA' 난에는 파업초기 70% 이상의 글이 [파업지지]라는 제목을 단 글로 뒤덮이게 됩니다. 또한 통신지원단에 집계된 숫자만도 300개가 넘는 통신 동호회·포럼과 100여개의 홈페이지가 블랙리본을 대문에 게시하는 블랙리본운동에 동참했으며, 온라인으로 전개한 노동법 안기부법 철폐 서명운동에 7천여명의 국내외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대기록을 남기게 되지요. 나아가 세계 최초로 만든 '총파업(STRIKE) 홈페이지'는 외국에서 국내 투쟁 소식을 접하는 가장 유력한 창구가 되면서 인터넷 메일을 통한 국제적인 지지여론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사진: 96~97년 총파업 당시 운영한 Strike 홈페이지)

이처럼 총파업 통신지원단은 PC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통신공간에 총파업 지지여론을 유도하고 국제연대를 확산하는 활동을 진행하면서 국내외로부터 신선한 충격을 몰고 온 바 있습니다.

올해 서울지하철 파업을 필두로 한 공공연맹 총파업 때도 노동네트워크가 구성한 고용안정 통신단의 주도로 총파업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알리고, 현장의 투쟁 모습을 그림파일과 음성파일, 동영상파일 등으로 전국 각지에 생생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사진: 99년 지하철 총파업때 노동넷 Strike 홈페이지)
 

▶ PC통신 안에 또 하나의 사회가 있다

  우리는 PC통신과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 다니는 것을 '항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PC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사실 우리 사회에서 정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범주를 포함합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주요 중앙일간지와 주간지의 기사를 PC통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청와대·안기부에서 민주노총·한통노조까지' 모든 계급계층의 정보가 다 있습니다. 초호화 빌라의 시세에서부터 "드립니다/주실 분~"으로 시작되는 중고품 벼룩시장까지 다 망라돼 있습니다. '고전'에서 신세대의 통통 튀는 최신 유행어까지 없는게 없는 곳이 바로 PC통신입니다.
(이 연재를 통해 우리는 노동조합 활동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찾는 방법에 대해 하나 하나 알아볼 예정입니다.)

그런데 PC통신으로 공공정보를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일반인들이 정보나 의견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룰라가 표절했다는 일본의 음반을 어느 이용자가 PC통신망에 음악파일로 올렸고, 이것이 PC통신 이용자들의 손에 손을 타고 삽시간에 수천 수만명에게 전해지면서 형성된 PC통신 상의 여론이 룰라그룹 해체라는 '표절에 대한 역사상 최초의 단죄'를 가져왔다는 따위는 이제 흔한 일이 됐습니다.

여론이 꼭 방송사와 신문사를 소유한 자들만의 독점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PC통신을 '쌍방향 매체'라고 부르며, 직접민주주의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진보 세력에게도 이건 가히 매체혁명이라 부를 만큼 주목되는 점이지요.

PC통신에는 동아리(=동호회)도 있어서 주 1회 모임(=정팅)도 갖습니다. 집에 있으면서도 컴퓨터로 전화만 걸면 마치 여러 명이 한꺼번에 까페에서 만나듯이 모임을 가질 수 있다는 얘깁니다. 물론 민주노총과 같은 전국 규모의 조직에서 전국회의를 하는 것도 쉬워집니다. 각 지역/연맹/단위노조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전화만 걸고도 '전국 통신원 회의' 같은걸 매주 할 수 있습니다.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과 경비가 절약됩니다. 시내전화요금이면 끝이지요. 회의록도 컴퓨터가 알아서 작성(=갈무리)해 줍니다.

PC통신 안에서는 현실 사회에서 쟁점이 되는 주제에 대해 토론실을 만들어 격렬한 토론을 벌이기도 합니다. 경우에 따라선 각 주제에 대해 찬반투표를 하기도 하고, 서명운동을 하기도 합니다.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개악으로 비롯된 전국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벌어지는 순간, 공장과 거리의 투쟁만큼이나 뜨거운 지지와 연대의 움직임이 온 통신망을 뒤덮고 있기도 한 곳이 바로 PC통신입니다.

PC통신은 한번 빠져봐도 손해볼 것 없을 무한한 정보의 바다이자, 우리가 진출해야 할 또 하나의 활동공간 투쟁공간으로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1
(2000.5월호)

 ♣ 이 글은 노정단에서 민주노총 <선전동네> 에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전체 목차

 (1) 노동자의 또 하나의 무기, PC통신!
 (2) 선전담당자의 충실한 보좌관, 노동정보 찾기
 (3) 1등 투사는 놀이에도 1등! 생활문화 정보찾기
 (4) 정보화 시대, 노동운동의 고민과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