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운동의 성과와 과제

한과청 월례포럼 발제문



-한국과학기술 청년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1. 들어가며

저는 7년의 사회 생활을 한국과학기술청년회 (이하 한과청)와 같이 해온 정보산업분야에 종사하는 직장인입니다. 제가 한과청에 들어간 90년 가을은 한과청이 정식으로 출범하기 전에 준비 모임 형태로 몇개의 소모임이 중심이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지금 돌이켜 보건대 제가 그당시 과학 기술 운동이라는 (대학 재학시절 관심도 갖지않았던) 곳에 관심을 가졌던 까닭은 다소 패배적이며, 자기만족적인 (그래도 뭔가는 해야될것 같은..) 이유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물론 아래에서 말하겠지만 이는 한과청 전체에 해당되는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에게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87년의 6월 민주 항쟁과 이어진 7,8월의 노동자 대투쟁은 우리로 하여금 대중운동의 중요성과 그것의 가능성을 충분히 느끼게 하였고, 제가 일을 하고 생활할 기반은 노동자이면서 과학기술자들이 모여있는 곳이기에 이속에서의 대중 운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에대한 자세한 배경에는 그 당시 한국사회를 어떻게 볼 것이냐 등의 정치 경제 학적인 논쟁이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후 6년 반 동안의 한과청에서의 저는 때로는 대중 활동가로써, 때로는 과학기술자 대중의 일원으로써, 때로는 전문가임을 자처하는지식인으로써 느껴왔습니다. 누가 한과청이 무엇을 하는 곳이냐는 질문을 짧은 대답을 요구하며 해올때, * 과학 기술 운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 젊은 이공계 출신들이 모여서 올바른 과학기술의 사용을위해 노력하는 곳입니다., * 과학 기술 관련 정책을 토론, 비판하며 올바른 대안을 준비하는 곳입니다 * 등등 질문의 대상에 따라 다양한 대답을 했지만, 제 스스로 만족할 정도로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이는 그만큼 과학기술운동 ( 또는 과학기술대중운동) 의 정의와 범주에 대해서 끊임없는 토론과 실천과 시행착오가 있어 왔다는 이야기이고, 이 문제는 현재도 앞으로도 계속 제기될 문제라 생각됩니다. 제 스스로 이론적 토대의 빈약함을 자위하는 것인줄은 모르겠으나, 과학기술자, 과학기술, 과학기술운동 등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범주에 대한 논쟁보다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더욱 앞섭니다.


1. 한과청의 출발. ( *90년 ~ *92년말)

[대중운동으로써의 과학기술운동]

한과청은 출발과 함께 크게 두가지의 과학기술운동 내용을 담았습니다.첫째는, 과학기술 그 자체였으며, 둘째는 과학기술자들을 모으는일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전교조의 활동이 참교육을 내용으로하는교육운동과, 노동자인 교사들의 노동운동으로 이루어지는것과 유사합니다. 올바른 과학기술의 정립이 교사들의 교육운동과 비교될수있으며,과학기술자들의 조직화가 교사들의 노동운동과 비교될 수 있을것입니다. 이는한국사회의 모든 계층(계급이 아님)운동이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도같은것입니다. (각 계층마다 중요하게 강조되는 측면이 조금씩 다를수는있음) 이 두가지는 두마리의 토끼가 아니라 어미 가슴에 새끼를 안고 뛰어가는 캥거루로 인식되었습니다. 이 두가지를 기본으로 활동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통신문제 연구회는 통신시장개방압력의 구체적내용과 이에대한 비판및 대안마련을 추구하였습니다. 전문성을 내용으로하며, 한국과 미국과의 정치경제적 관계가 통신시장 개방을 통해 첨예하게 들어났으며, 국회나 재야단체에서가 아니라 통신분야 종사자들의 직접적인 문제제기를 통해 언론과 사회적 관심을 유발하였습니다. (과학기술 운동으로서의 활동이 중심)

한글코드개정추진협의회: 컴퓨터에서의 한글코드 표준 제정을 정부에서 졸속으로 처리함에 따른 S/W 개발 관련 종사자들의 문제제기를 조직화해 내고,대안을 마련하여 정부안을 수정 시키는 성과를 이끌어 냈습니다. 한글코드개정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으나, 여기서는 논의하지않겠습니다.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자의 조직화가 동시에 이루어진 활동)

통신문제 연구회의 활동이 전문성을 바탕으로한 비판과 폭로가 중심이었다면, 한글코드개정 추진협의회의 활동은 흩어져있던 과학기술자들이 의식적으로 모여, 비판과 대안 그리고 다양한 실천활동을 통해 *승리*의 경험을 가질수 있었음. 실제로 코드개정추진협의회의 활동 경험은 이후 한과청 대중활동의 중요한 실천적 검증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과학기술백서작업: *92년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여 과학기술운동관련4개단체(대덕의 과기노조, 대학교의 과동협, 이공계대학원의 과기연,한과청)가 처음으로 연대를 시도해본 사업이었습니다. 과학기술의 각 분야를나누어서, 문제점과 대안들을 모아 출판과 심포지움을 통한선전활동이었습니다. 이는 일종의 정치활동이었으며, 대통령 선거라는 열린정치공간을 통해 왜곡된 과학기술에 대한 공개적인 문제제기였습니다.

이외에도 사무전문직 노동운동의 내용을 고민하는 모임과, 과학기술 정책연구모임등 여러가지의 시도가 진행되었습니다. 이시기는 한마디로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모습과 대중운동 활동의 장으로써의 모습이 공통으로 모색되던 시기였으며, 정치적인 행사등에 또한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2. 소모임 활성화를 통한 대중화 시도. (*93년 ~ *95년)

사무국 강화 : 교육부, 편집부등의 활성화로 정기적인 회지발행과 내부교육등이 강화되었습니다. 이전의 활동을 토대로 다양한 형태의 한과청 조직꾸리기가 시도되었습니다.

정보산업관련 통신문제 연구회와 한글 코드모임은 내용을 통합하여 소모임 성격의 정보산업 모임과 대외 사업을 주로 기획하기위한 정보기획위로 나뉘어져 주로 내부 구성원들의 정보산업정책, 산업동향등에 관한 토론과 대안 마련을 위한 학습이 진행되었습니다.

특허모임 :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선진국들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권리행사가 주요 무역분쟁의 원인으로 제기되는 싯점에, 특허 분쟁의 조정및 해결을 담당할 특허 법원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었으며, 특허 관련종사자들의 대안제시와 연대활동, 서명등의 활동으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는 최초로 한과청이 과학기술의 정치적인 위상을 관련당사자들(변리사협회)과 연대하여 올바로 자리잡게한 사업으로평가되었으며, 이후 다양한 과학기술 관련 단체들과의 사업에 귀중한 경험이되었습니다.

환경, 법률, 과학기술 시사모임, 과학기술 노동운동 등 다양한 모임이 생겨났으며, 교수, 변리사 등등의 과학기술 관련 인사들과 과학기술의 문제를 같이 논의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시기는 과학기술의 내용이 상대적으로 강조된 시기였으며, 정치적인 활동보다는 과학기술 내용을 중심으로한 기존의 제도권 단체들과 연대 노력을 하였습니다.

즉, 과학기술자의 자기선언을 시도한 시기라면, 이 시기에는 자기틀을 갗춘제도권내에 위치하기위한 노력의 시기라고 여겨집니다.


3. 대외사업 강화를 통한 대중화 시기(*96년 ~ 현재)


이전의 시기의 활동들이 만족할 만큼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하면서 한과청은 일정정도 활동의 정체성을 느끼게 됩니다.

대외활동 : 몇개의 기획위를 통하여, 대외사업을 다양하게 펼치려 하였으나, 몇번의 포럼을 제외하고는 아직 다양한 방식을 개발하지 못하였으며, 과학기술계에 진입하여 입지의 폭을 넓히려 합니다. 작년에 디지털이동통신에서의 CDMA 기술 표준화의 문제와 핵 원자로 문제등을 가지고 포럼을 개최하였습니다. 온라인상의 통신 단체들과 연대 강화.

대내활동 : 소모임 활동의 과도기라 여겨집니다. 정보통신 부분에서의 다양한 문제제기와 환경의 변화로 이에 대처하고자하는 노력들이 새로운 형식으로 시도되고 있습니다. 한과청 전체적으로는 정체성확보가 어려운 시기였으며, 이는 올해의 주 사업목표가 될것입니다. 이 시기는 한과청의 변환기라고 여겨집니다. 구성원들의 변화와 소모임의 다양성 확보를 통한 새로운 모임의 활성화및 다양한 형식의 모임이 구성되리라 봅니다.



정보화사회의 모든 것을 의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