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업 과 정 보 화




김 성 원 (노정단 운영위원)


9월 10일 선경 인더스트리는 불황 타개책의 일환으로 전체 사원의 1/6인 950여명을 명예퇴직의 형태로 감원시킨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선경 인더스트리의 대대적인 감원조치는 사회적인 충격과 함께 여타 기업들의 본격적인 감원조치의 전조가 되었다.

한국유리는 전체 직원의 20%인 4백95명을 이를 통해 내보냈다. (주)선경도 곧 명예퇴직을 실시할 예정이다. 경총은 대한항공 엘지정유 대우중공업 삼미특수강 삼양사 등 44개 기업이 현재 명예퇴직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말까지는 상당수의 대기업 및 금융기관들이 이를 도입할 것이란 전망이다.


몇 해 전부터 명예(조기)퇴직제, 신인사제도, 현장재배치, 연봉제 등을 통해 고용구조 조정작업을 벌여온 기업들은 불황을 계기로 이를 본격적으로 실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대대적인 감원조치는 현재 지속되는 불황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판단을 전제로 한다.

기업과 정부는 저성장과 불황의 원인으로 고금리, 고지가, 고임금 등을 들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인 고비용 구조를 가장 중심적인 문제로 사고하고 있으며, 이의 해결을 위해 과감한 감원과 임금동결책을 들고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업과 정부는 감원과 임금동결로만 현재의 지속적인 불황을 타개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기업과 정부는 자본의 합리적 운영을 위해 그간 부실부문의 정리와 생산기지의 해외이전, 생산의 자동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불황을 타개하는 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후유증을 가져오게 될 것은 역시 인원감축이다. 명예퇴직, 계열회사로의 전출, 강제감원 등은 곧바로 개인소비의 축소에 따른 성장둔화로 연결될 뿐만 아니라 사회문제로 비화해 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주)극동조사연구소(소장 김재덕)가 지난 18일 서울 등 전국 6대 도시에 거주하는 20∼60살 성인남녀 6백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을 실시해 24일 발표한 `감량경영에 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6.2%가 본인 또는 가족의 실직을 생각해 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40대는 62.5%가 실직을 생각해 본 적이 있으며 20.8%는 "심각히 생각해 보았다"고 답해 불안감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잖아도 최근 몇 년간 지속된 명예퇴직 바람에 전체 실업률은 2%대의 기록적인 수치인데도 50대 실업률은 94년을 기준으로 24%까지 올라가 있는 상태다. 이들의 재취업 보장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8월말 현재 실업급여 신청을 한 실직자 2천1백37명의 8.4%만이 재취업했고, 이나마 경비원 청소원 등으로 하향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대적인 감원조치와 실업의 위험에 대해 노동진영의 비판은 즉자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현재 불황의 원인은 기업이 기술개발에 소홀한 때문이다',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이나 생산성 상승률을 초과한 적이 없음에도 불황의 원인을 고임금문제로 환원하며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정도이다.

'현재의 불황과 감원조치에 대해 자본의 순환에 따른 일시적 현상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일 뿐이다' 하는 식의 판단은 기업들의 논리이지만, 노동진영 또한 이러한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현재의 불황은 순환적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감원과 실업의 증가는 결코 단기간에 끝날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불황은 고도성장이 끝난 74년부터 시작돼 회복과 침체가 파동을 그리며 오늘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다. 미국 또한 지난 79년이래 미국 기업들이 경영합리화라는 구실 아래 취한 감원조처로 4천3백여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했으며, <뉴욕 타임즈> 10월 3일자에 의하면 미국의 실업자 발생 수는 지난 79년 1백23만명이던 것이 80년대 들어 해마다 2백만명대(83년에만 3백4만명)를 기록한 뒤 90년대부터는 해마다 3백만명선을 넘어서고 특히 92년의 경우 3백43만명에 이르렀다. 이처럼 전세계적인 실업의 증가는 결코 단기적 현상이 아니며 70년대 말 이래로 자본의 합리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온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속적인 불황이 기업들로 하여금 감원을 강제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구축에 따른 세계시장화와 무한 경쟁의 돌입으로 인해 결국 기업들은 생존전략과 자본의 합리화 전략의 하나로 감원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대대적인 감원조치는 불황타개라는 수세적 조치이기 보다는 다른 관점에서는 공세적인 조치인 점이 있다. 기업들은 경기변동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유연적인 노동시장을 형성할 필요와 함께 생산현장에 대한 장악력을 높혀내기 위해 노동절약기술의 개발을 새로운 노동통제책의 하나로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여기서 노동절약기술은 생산의 자동화와 정보화에 다름 아니다. 자동화기술과 정보기술의 발달로 자본은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생산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노동진영에 대한 공세적인 감원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화가 노동통제와 노동절약기술의 하나인 것은 어떠한 논의에 앞서 미국의 경우 정보초고속도로 등 정보통신의 발달로 더더욱 실업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을 통해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과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정보화로 인해 유통과정이 단순화되고, 사무인력의 필요성이 점점 줄게 되었다. 또한 전세계적인 원격통신은 지난 시절 생산현장내의 자동화를 먼거리에서 생산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원격자동생산이 가능하게 하고 있다.

정보화로 인한 피해는 블루칼라 노동자들보다 우선적으로 사무직 화이트칼라 노동자에서 부터 시작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80년대 초와는 반대로 이제는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실업자 수가 고졸 이하의 실업자 수를 훨씬 능가하고 있으며 특히 90년대 들어 적어도 연봉 5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누린 실업자 수가 80년대보다 2배를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 국내에서 벌어지는 명예퇴직의 주대상도 사무직에 집중되고 있다.

노동절약기술의 하나로서 정보화와 자동화기술의 발달로 자신감에 찬 자본의 공세는 결코 현재의 불황국면이 전환돼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기업들은 말 안 듣는 노동자들보다 자동생산기술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제레미 리프킨 교수는 "노동은 현재 처음으로 생산과정으로부터 체계적으로 제거되고 있다. 1세기 이내에 시장 부문의 대량 노동은 사실상 세계의 모든 산업 국가들에서 사라져 갈 것이다. 정교한 정보통신기술의 새로운 시대가 다양한 노동상황에 신속하게 침투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은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대부분의 인원 감축은 보다 적은 노동력으로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새로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과 보다 나은 컴퓨터 네트워크나 하드웨어로 인한 것이다."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전세계 기업의 5% 정도가 향후 10년 이내에 불가피하게 다가올 새로운 기계 문화, 대량실업에로의 이행을 시작했다. 노벨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레온티에프(Wassily Leontief)는 이러한 이행의 중요성을 음미하면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보다 정교한 컴퓨터의 도입으로 인하여 마치 농경 시대에 있어서 말의 역할이 트랙터의 도입에 의해서 감소되고 제거된 것처럼, 가장 중요한 생산 요소로서의 인간의 역할이 감소하게 될 것이다." 이밖에도 칼 마르크스가 세계 노동자의 단결을 호소한지 147년 이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기술 자문이자 장관인 아탈리(Jacques Attali)는 노동자 시대의 종말을 주장했다. "기계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이다. 노동계급에게는 해고 통지서가 발부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실업과 정보화의 관계는 보다 분명해졌다.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물결은 현재까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혁명적 변화와 파장을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의 감원조치와 그것을 용이케 하는 정리해고제의 도입 등에 대한 노동진영의 대응에서 결코 타협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즉자적인 비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대안과 투쟁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의 거대한 투쟁이 말해주듯이 정보화혁명 이후 우리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