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97/03/22자입니다.
<강병태기자 brian@chosun.com>.
지난 1월말 인터넷에서는 내노라하는 컴퓨터 전문가들이 모여 「암호해독경연대회」를 벌였다. 세계적인 암호기술 전문업체 RSA사가 주최한 이 행사에서 40비트의 키를 사용한 암호가 불과 3시간 반만에 깨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주인공은 미국 버클리대 대학원생 이안 골드버그. 그는 2백50대의 워크스테이션을 연결, 시간당 1천억회의 조회를 통해 암호 해독에 성공했다. 암호가 풀린 메시지의 내용은 『이래서 더 강력한 암호가 필요한 겁니다.』.
40비트보다 난이도가 2백58배나 높은 48비트급 암호도 유럽의 암호전문가팀이 3천5백여대의 컴퓨터를 연결해 13일만에 깼다. 세계적인 암호학자 로널드 라이베스트는 40비트 정도의 암호는 30만달러 정도만 연구비를 투입하면 단 0.18초내에 풀 수 있다고 장담했다. 결국 40비트급의 암호키를 사용한 정보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꺼내볼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암호 기술은 대부분 40비트급 이하다. 넷스케이프의 「네비게이터」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익스플로러」 등 미국산 소프트웨어들은 예외없이 40비트 이하의 낮은 암호화 기능을 탑재한 제품들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얼마전까지 미국 정부는 40비트 이상의 고난도 암호화 기술이 들어있는 제품을 수출하지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을 적대시하는 국가나 테러리스트들이 고난도 암호 기술을 사용해 교신할 경우, 미 수사당국이 이를 전혀 탐지할 수 없기 때문이란게 수출 금지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정부가 40비트 이상의 암호 기술도 수출을 허용한다」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벌써 몇몇 미국 회사들이 56비트, 1백 28비트 암호 기술이 들어있는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일부 국내 대기업들도 이 때를 놓칠세라 즉각 도입 판매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수출 허용조치 말미에 한가지 단서가 붙어있다. 「키 에스크로(Key Escro)」정책, 40비트 이상의 암호화 기술을 수출할 경우, 그 기술을 사용해 암호화된 정보를 즉각 해독할 수 있는 마스터 키를 미국 정부가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즉 미국정부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마스터키를 사용해 감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수출의 전제 조건이다.
지금까지 이 정책을 받아들여 수출 허가를 받은 업체는 4곳 정도. DEC사와 사이링크, TIS사 등이 미 상무부로부터 56비트 암호화 기술 제품에 대한 수출 승인을 받았고, 지난 달에는 전자상거래용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인 오픈마켓사가 최초로 1백28비트 암호화 기술 제품의 수출을 허가받았다. 암호기술 전문가들은 이제 미국의 암호화 장비를 사용하는 나라는 자국의 비밀 정보가 담긴 금고의 열쇠를 미국 정부에게 맡겨 놓은 꼴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미국 정부는 마스터키의 관리를 법적으로 철저히 보장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다. 지난해 미국 - 유럽 연합 (EU)간의 통상회담을 앞두고 미 연방수사국(FBI)이 유럽연합정부의 네트워크를 수차례 해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유럽연합의 네트워크를 구축한 미국 업체에 의혹이 집중됐던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해부터 국내에서 인트라넷과 전자상거래 등의 본격적인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역시 가장 큰 걸림돌로 떠오르는 문제는 정보 보안. 아직도 대다수 국내 기업과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이 보안 기술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미국의 차이는 그다지 멀지않다. 데이콤 전자지불연구소 권도균 선임연구원(35)은 그차이를 6개월 정도로 보고있다. 『정부 조달 품목에 1백비트 이상의 암호화 기술을 의무화하도록 규정하고 원천 기술 개발을 뒷받침해 준다면 그 격차는 얼마든지 따라 잡을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현재 정보보호 문제는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인 대응 자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5월 정통부 내에 정보보호과가 신설됐고 안기부와 정통부가 공동으로 정보보호센터를 설립, 각종 평가기준을 마련하고 관련 정책을검토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올 초에는 정통부 산하에 정보보호산업 육성대책반이 구성돼 국내외 시장동향 분석과 전문인력 육성책도 마련하고 있다. 정보보호센터의 한 관계자는 『장차 정보의 예속은 곧 국가의 독립성 여부와도 직결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자주국방 못지않게 정보보호 기술의 국산화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암호해독 비용과 소요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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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용 40비트 56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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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달러 5시간 38년
1만달러 12분 556일
30만달러 0.18초 3시간
1천만달러 0.005초 6분
3억달러 0.0002초 1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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