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96/02/28 자입니다.
상황 종료를 알리는 「뜻밖의 메시지」. 그리고 이내 컴퓨터 화면에 즐비하게 뜨는 엉뚱한 명령어들. 인터넷 군사망으로 한국·일본과 가상의 방어 훈련을 진행 중이던 미국 국방부 사령탑은 순간 대혼란에 빠졌다. 핫 라인 (직통전화)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네바다주의 미 제37군 사령부에서 날아온 급전. 『사막 한복판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들이 일제히 발사되기 시작했다』. 태평양 함대의 다시 화급한 연락. 정체불명의 미사일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는 전갈. CNN방송도 모스크바와 도쿄가 핵미사일 공격을 받았다고 긴급 뉴스를 전했다. 통신도 곧 모두 끊겼다.
공상 과학 영화가 아니다. 제이미 골릭 미 법무차관이 지난해 언론에 공개한 사이버 테러·사이버 워 (전쟁)의 가상 테러 모습이다.
국제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세계 유명 금융기관·중개거래소나 전자 상거래 업체들의 컴퓨터 시스템, 그리고 유명 인사의 인터넷 홈페이지까지 공개·비공개 테러를 감행하면서 사이버 스페이스 (컴퓨터통신 네트워크의 가상공간)에 대한 「테러 공포」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더구나 이들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은 거의 대부분 군의 「진보된 정보전」(Ａdvanced Information Ｗarfare)의 첨단 기법으로 무장한 데다 점차 조직화되고 있어 자칫 「사이버 전쟁」으로까지 치달을 조짐이다.
미 국가안전국 (NSA)에 따르면 93년부터 지난해까지 사이버 테러리스트나 사이버 갱 등으로부터 협박당한 테러 건수는 모두 40여건. 피해금액도 4천8백억원 (4억 파운드)에 이른다.
사이버테러 기법은 해커 (침입자) 보다 몇 수 위다. 가장 전형적인 수법은 일명 「전자우편 폭탄」(Ｅ－Ｍail Ｂomb)과 「서비스 거부」(Denial Of Service) 「논리폭탄」(Logic Bomb).
「전자우편 폭탄」은 상대방 컴퓨터 시스템에 무한정 쓰레기 전자우편 세례를 퍼부어 결국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수법. 「서비스거부」는 컴퓨터통신을 시작할 때 거쳐야하는 신호송신－＞ 수신측 응답－＞ 송신측 신호전송의 인증 과정에서 상대방의 신호를 받고서도 의도적으로 신호전송을 거부해 컴퓨터 시스템을 계속 신호 대기 상태로 묶어놓는 기법.
「논리 폭탄」도 13일과 금요일 등 일정 조건을 만족시키면 특수 프로그램이 저절로 작동돼 컴퓨터 시스템을 공격, 귀중한 정보들을 무차별 파괴하는 수법이다.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은 우선 최고 보안 상태의 컴퓨터 시스템에 침투해 일부 주요 정보를 망가뜨려 놓는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당신들의 컴퓨터 시스템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믿겠는가」라는 메시지를 남기곤 한다.
대표적인 테러 사례는 지난 93년 1월 한달동안 런던의 금융기관·중개거래소를 3차례나 공갈 협박해 각각 1천만 파운드 이상씩을 뜯어낸 사건. 당시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이 런던의 중개거래소 컴퓨터 시스템을 일부 시범적으로 파괴한 뒤 거래가 중지되자 관련 기관이 어쩔 수 없이 1천만파운드를 스위스 취리히 은행 계좌로 입금시켰다.
그 뒤 1∼2주 간격으로 한 유명 은행과 중개거래소가 다시 공격을 받아 각각 1천2백50만 파운드와 1천만파운드를 뜯겼다.
지난해 10월에는 체코의 한 은행이 테러를 당해 1천9백만달러를 털렸고 미국 유명 전자 쇼핑몰업체중 하나인 「웹콤」이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 대목에 정체불명의 사이버 테러리스트의 「전자우편 폭탄」 세례를 받아 40시간이나 시스템이 마비되었다. 국내에서는 포항 공대의 컴퓨터 시스템이 우편폭탄 세례를 받기도 했다.
세계적인 사이버테러·사이버갱조직은 크게 4개 그룹. 이 중 한개 그룹은 러시아를 근거지로 구 소련의 자금을 받아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이버 테러조직으로 곧바로 변할 수 있는 지하 해커조직도 「펠콘/시키즘」 「핵무기(Nuke)」 등 100여개가 활동중이다.
미 NSA를 중심으로 연방수사국 (FBI) 산하 컴퓨터 범죄수사대(NCCS)와 세계각국의 인터폴 등도 공조체제를 갖추고 사이버 테러리스트들을 뒤쫓고 있다.
한국정보보호센터 이재우박사는 『사이버 테러 피해 기관이나 업체들이 자신의 이름이 알려질 경우 신뢰도가 떨어질 것을 염려, 공개를 꺼리는 바람에 건수는 알려진 보다 훨씬 많을것』이라며 『경쟁업체의 매출감소를 노리거나 돈을 갈취하기 위한 테러는 피해규모가 한정적이지만 종교·이념적인 테러로 발전하면 「사이버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먼 훗날에도 있을것 같지 않았던 사이버테러. 그러나 지금 세계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으며 이들 테러리스트 앞에 안전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늦기 전에 주요 국가시스템의 사이버테러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최득룡기자/
저는 이 기사의 제목을 "해커 정보자본주의를 공격하다."로 바꾸고 싶습니다.
김성원